1. 후회없는 한국의 뮤지컬영화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영화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영화를 홍보하는 측에서는 이 작품의 최초를 붙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뮤지컬 영화로서 최초는 아니지만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장르로서는 최초라고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국내에도 쥬크박스 뮤지컬이라 부를 수 있는 본격 뮤지컬 영화가 나왔습니다.
뮤지컬을 아주 좋아하는 저로서는 반기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마땅히 칭찬해야 하지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그렇다고 평가 절하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영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영화계에도 이처럼 뮤지컬 영화가 제작된다는 점에서는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한국에서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뮤지컬 열기를 생각해 보면 시대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 보는 한국식 주크박스 뮤지컬이고 솔직히 말해서 저는 염정아 류승룡 두 배우가 음악을 했거나 뮤지컬을 했다거나 가창력이 좋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기껏 한국식 뮤지컬 영화라고 선을 보였는데 정작 내용물이 좋지 못하면 앞으로 이러한 시도가 위축될 수도 있기때문입니다. 어색하거나 어설프게 나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습니다.
하지만 제 걱정은 영화를 보는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어설픔 같은 건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노래로 춤으로 이어지는 뮤지컬 장면들은 자연스러웠고 과도한 연출은 없었습니다.
이 정도면 납득하고 볼 수 있죠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뮤지컬 장면 자체는 문턱을 넘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영화 전체의 수준을 좌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질병 그로 인해 떠나는 추억의 여행이라는 컨셉은 분명 가족이라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 누구에게나 공감을 줄 수 있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익숙하고 식상하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과연 이 작품은 그 식상함의 벽을 넘어 감동을 줄 수 있을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2. 인물과 줄거리
주인공 세연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엄마입니다.
제가 중년 여성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굳이 엄마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 엄마라는 단어에 담긴 여러 의미를 세연이 표현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진봉을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 결혼 후에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헌신해 온 사람 한 사람의 여자이기보다는 엄마로 기억되는 사람 손에는 물이 마를 날이 없고 남편 챙기랴 아이들 챙기랴 정신이 없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길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청천병력 같은 질병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폐암 말기 남은 시간은 2개월 그녀의 삶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시간은 멈췄지만 자신의 암 소식을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봉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이들 생각부터 하면서 세현에게 동정조차 사치라는 식의 태도를 취합니다. 이에 세연은 참다 참다 폭발합니다.
그녀의 폭탄 발언은 바로 첫사랑을 만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만약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혼하겠다는 협박도 함께합니다.
영화의 초반부 흐름은 충격과 비애가 흐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람과 이 영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갈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염정아의 노래에 공감해서 울컥 감정이 나오는 부류의 사람이 있고 감정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전자의 관객들에게 인생은 아름다워는 영화 끝까지 같은 종류의 감동과 웃음을 선물합니다.
이 영화가 정직한 후보 2와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게 된 이유도 바로 그 포인트 감동과 공감의 정서를 끌어내는 데 있을 겁니다.
하지만 후자의 사람에게는 뭐랄까요. 식상하고 평범한 이야기가 한 편 있을 뿐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뮤지컬의 힘은 대단합니다.
음악과 춤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 과정을 영화는 뮤지컬의 판타지와 현실의 교차로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서 세연과 진봉이 세현이 어렸을 때 살았던 그리고 첫사랑과 처음 만났던 목포로 방향을 잡고 출발하는 순간 세연의 들뜬 마음이 노래와 춤으로 표현됩니다.
첫 휴게소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이 장면에서는 세현의 감정과 기분 그리고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 휴게소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뮤지컬답게 함축해서 보여줍니다.
현실의 지루한 부분을 잘라내고 남은 것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면 뮤지컬은 그 현실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핵심만 쏙쏙 뽑아서 과장해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 환상과 이야기의 결합이 훌륭하게 펼쳐지는 것이 초반 뮤지컬 장면의 힘입니다.
엄마를 쳐다도 보지 않는 아들, 방에서 문 걸어 잠그고 사는 딸, 지지리 말도 안 듣는 진봉
그나마 남편이 운전해 주는 덕에 세연은 고등학교를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첫사랑의 소식을 구하고 이야기는 과거 회상으로 향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방송반 동아리 활동으로 만난 첫사랑 정우의 이야기입니다.
그야말로 교회 오빠를 넘어선다는 동아리 오빠의 등장입니다.
세연은 정우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두 사람은 이문세의 별밤을 보러 서울까지 가면서 가까워졌습니다.
그렇게 둘은 알콩달콩 친해지게 됩니다.
이후 세연의 모험은 정우를 찾는 여정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의 개인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고 진봉은 그 사실에 어쩐지 신이 납니다.
하지만 부산으로 다시 섬으로 향한 세연은 진실을 알게 됩니다.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그리고 편지를 준 것도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정우를 오해했던 세연, 오히려 친구인 현정이 이간질을 했다고 생각한 세현은 사실 정우가 좋아했던 것이 세연이 아니라 현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세연과 진봉이 함께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목포든 어디든 진봉과 세연이 같이 다니는데 어디를 가더라도 두 사람이 함께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둘이 신혼여행을 갔던 추억이 있고 세현이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되면서 처음으로 만난 진봉의 스토리는 절절합니다.
세연이 고등학교 때 오해했던 그 첫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절실하게 세연을 원했던 사람이 바로 진봉이었죠. 세연도 진봉에게 사랑을 느꼈고요 그렇게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을 무한 긍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영화의 진행은 나쁘지 않아요.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3. 기억에 남는 장면
특히 몇몇 장면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 가벼운 장면부터 시작하면 진봉과 세현이 차를 타고 가다가 군인들을 발견하는 장면입니다.
훈련 중 이동하는 군인들을 본 건데 세현이 고생한다고 말하자 군필인 진봉은 우리 때는 30개월 복무였다.
2년 6개월 요즘 군대가 무슨 하는 대목에서 화면이 바뀌며 진봉 아버지 박영규가 나오면서 요즘 군대가 군대냐! 를 외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입니다.
진봉 아버지는 내가 월남전 참전했을 때는 총알이 날아오고 폭탄이 터지고 하는 이야기를 끌어내면서 "라테는" 을 펼치죠 제가 영화를 보면서 빵 터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자기 세대가 가장 힘든 법이라지만 월남 전에 직접 참전했던 아버지가 요즘 군대가 군대냐고 하는데 뭐 할 말이 있겠습니까 거기에 세영과 진봉이 헤어지는 장면에서 <안녕이라고 말하지마>가 나오는데 행시 떨어진 거 굳이 꺼내면서 속 박박 긁으시는 분이 별안간 일어나서 이승철 노래를 기가 막히게 뽑는 모습이라니 감독이든 박영규 배우든 누구든 아무튼 이 장면은 약을 거하게 한 게 틀림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그다음으로는 박세완 옹성우 양병철이 부른 아이스크림 사랑입니다.
이 장면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기억에 남기는 하지만 저는 배우 옹성우의 열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옹성우는 사실 제가 서울 대작전하고 이 영화에서 처음 봤기 때문에 잘 모르는 배우였는데 알아보니 톱클래스 아이돌 출신이었습니다.
말하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 옹성우의 연기 자체는 보여줄 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역할 자체가 소녀들의 마음을 훔쳐가는 착하고 친절한 동아리 오빠 역할이니 스테레오 타입이라 볼수 있습니다.
인상 자체는 과거 가수 홍경민이나 짐 캐리가 떠오르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사랑에서 저는 시작부터 터졌는데 다름이 아니라 안무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 때문에라도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다른 배우들도 물론 열심히 연습해서 안무를 멋지게 연기해내고 있지만 옹성우는 혼자 절도 있는 그야말로 진정한 프로의 춤이 뭔지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화려함과 절제의 조화 폭발적인 동작이 너무 튀는 겁니다.
분명히 같이 추고 있는데 독무대처럼 보여요 뒤에는 눈싸움 하면서 군무를 추는 장면이 있는데 옹성우 혼자 너무 박자가 무슨 도끼로 나무 쪼개듯이 팍팍 꽂히고 동작도 완벽해서 춤을 전혀 모르는 저로서도 옹성우라는 사람이 얼마나 춤을 잘 추는지 알겠더군요.
이 영화는 유독 젊은 배우들도 빛난 영화입니다.
박세완은 뭐 말이 필요한가 싶습니다.
얼마 전 645에서도 정말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90년대 톱스타들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사투리 연기도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젊은 배우는 하현상일 겁니다.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거의 없지만 이미 싱어송 라이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배우로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의미 있는 일입니다.
엄마 말 안 듣는 아들 자기 세계에 빠진 아들의 역할을 담담하게 잘 보여줬습니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암 소식을 알았을 때 부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깊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일반적인 뮤지컬 영화는 인물의 상황이나 감정 운명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에 맞는 노래를 작곡하고 가사를 붙입니다.
그렇기에 뮤지컬은 한 편의 종합 예술로 존재하게 됩니다.
어쨌든 영화는 굳이 세연의 죽음의 순간을 이별의 순간을 그리지 않습니다.
떠나고 난 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진봉의 모습을 그리고 환상 속에서 세연을 다시 만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아름다움을 말하기 위해서 죽음이라는 소재를 그것도 90년대 후반에 유행하던 시한부 심판 이야기를 가져온 이 영화가 정작 죽음의 과정 그 자체는 전부 파내는 것이 본질에 다가가는 방법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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