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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땅굴작전

by 몬트비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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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오지마 섬

미군이 사이판 점령에 눈앞에 둔 시점인 1944년 6월 일본 정부는 일본의 도쿄와 사이판 중간지점에 위치한
이오지마 섬으로 쿠리바야시 장군을 부임시킵니다.
미군도 일본 본토 공습을 위해선 중간 거점인 이오지마 점령이 필요하다 판단하여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갑니다.
일본 영토에서 벌어진 첫 전투이자 가장 치열했던 곳 중 한 곳인 이오지마 전투였던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시작합니다.

2. 이오지마의 땅굴

사이고는 오늘도 어김없이 해안에 참호를 파고 있습니다. 이오지마 섬은 일명 유황 섬으로 땅은 건조하고 지독한 냄새
심지어 물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 사이고는 이 섬이 중요하든 그렇든 집에 가고 싶을 뿐입니다.
사이고의 불평불만을 들은 지휘관은 사이고를 구타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섬에 쿠리바야시 장군이 도착합니다.
훌륭한 지휘관은 머리를 써야 한다라는 말과 함께 매질을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1 방어선인 해안 참모도 작업 중지를 시킵니다. 제공권을 상실한 일본군에게 해안 참호는 필요 없는 죽음을 당할 게 뻔했습니다.
과거 미국 유학 시절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미국의 국력을 체험한 그는 미국과 전쟁을 벌이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미국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쿠리바야 씨는 적이 상륙할 때가 가장 취약하다는 일본의 기본 전술을 버리고 섬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새로운 작전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한 달 뒤 26연대 탱크 부대 지휘관이었던 니시 중령 쿠리바야시 장군과 친분이 있었던 그는 사이판 전투에 대해서 알려주는데 쿠리바야시 장군은 금시초문입니다.

연합 함대도 없는 이 시국에 지원군은 없을 것이고 일본군은 이오지마 섬에 고립 되어 버렸습니다.
쿠리바야시 장군은 이길 수 없다면 최대한 버티자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전략을 짜게 됩니다.
바로 섬 전체를 지하 요세화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군들은 들어보지 못한 작전이고 시간 낭비라며 극구 반대하지만
쿠리바야시 장군은 확고했습니다.
물이 부족한 이 섬에서는 비가 오는 날이면 생명의 연장선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막 도착한 신병들 그중 한 명은 사이고 부대에 배치되었고 헌병대 출신 심미지였습니다. 왜 헌병대가 이곳 전선까지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사이고는 그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빵집을 운영하던 사이고는 매일같이 헌병대가 찾아와서 강제로 빼앗았고 결국 가게 문까지 닫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강제 징병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다른 이유로 오게 된 병사들이 많았습니다. 몇 개월째 지하 요새를 만들고 있는 병사들이지만 해군 참모들은 아직도 이 전술에 대해 의문입니다. 그런 해군 사령관을 따로 불러 본국 귀환 명령을 내립니다.
패배가 짙어진 상황에서 이미 승패가 갈렸더라도 일본군들은 단 며칠이라도 버텨 진군을 늦출 수만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쿠리바야시 장군입니다. 미군은 상륙하기 전까지 수개월 동안 이오지마 섬에 수천 톤에 달하는 폭탄을 떨어뜨렸고 그나마 남아 있는 비행장까지 무력화시켜버립니다. 지하 요새화 덕분에 병력 손실은 적었지만 밤낮을 안 가리는 폭격은 병사들을 지치게 만들었고 견디기 힘든 고통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쿠리바야 씨가 이오지마에 온 날부터 6개월 뒤 모든 준비를 마친 미군 함대는 사이판에서 이오지마로 진격을 하고 있습니다. 쿠리바야시 장군은 병사들 앞에서 마지막 한 명까지 싸울 것을 명령하고 최후의 결전을 준비합니다.

이오지마에 도착한 미군 함대 남쪽에 있는 수리바치산 폭격과 동시에 미군의 상륙작전이 시작됐습니다.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미군이 해변 깊숙이 오기를 기다리는 쿠리바야시 장군 잠시 뒤 공격 명령을 내립니다.
기본틀을 깨버린 일본군의 공격에 미군은 해변에서 큰 피해를 입지만 적 위치를 파악한 미군들은 급속도로 적의 화력을 무력화시키고 수리바치산 코앞까지 다가왔습니다. 함락 위기에 처한 수리바치산을 버리고 북쪽 동굴로 철수 명령을 내려보지만 아다치 대령은 이를 거부하고 병사들과 자살을 선택합니다.
퇴각 명령을 들은 사이고는 지휘관에게 얘기해 보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죽음까지 강요받는 병사들 그렇게 하나둘씩 최후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이런 죽음을 원치 않았던 사이고는 서둘러 도망치려고 하자 시미즈가 그를 막아섭니다.
사실 있는 그대로 시미주를 설득시키고 사이고와 함께 북쪽 동굴로 이동합니다.
살아남은 병사들과 만나게 되고 동쪽 동굴로 합류하기 위해 돌파를 감행합니다.
사이고와 시미즈는 무사히 살아남지만 한마디도 못하고 죽을 위기에 구세주가 등장합니다. 쿠리바야시 장군 덕에 목숨을 부지한 이들은 잠시나마 휴식을 갖지만 하야시 소장은 이곳 동굴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이토 중위를 앞세워 수리바치산을 되찾기 위해 돌파 작전을 준비합니다.
이미 전세가 기울어진 상황에 완벽한 기습도 아닌 이런 무모한 공격은 병력 손실만 커질 뿐입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동굴로 돌아온 이토중이와 그 외 병사들은 전투에 참여 안 한 부대원들한테 괜한 하소연까지 합니다.
이 부대 지휘관인 니시 중령은 명령을 지켰을 뿐이라며 반박합니다. 더 이상 뭐라고 하기에는 이토 중위의 계급이 너무 초라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병사들을 니시 중령에게 보내고 탱크랑 같이 죽겠다며 대전차 지뢰를 얼싸안고 홀로 떠납니다.
잠시 안정을 찾은 두 사람 무의미한 전쟁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던 사이고는 항복할 테니 헌병 출신인 신미지한테 잡아가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심미지의 고백이 이어집니다. 과거 순찰하는 도중 시끄럽다는 이유로 개를 죽이라고 상관의 명령에 마음이 약한 나머지 허공에 총을 쏘고 죽였다고 보고 했지만 명령 불복종으로 이오지마에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 헌병에게도 인간다운 모습이 있는 게 사이고는 웃음만 나옵니다. 몇날 며칠 일본군은 필사적인 방어를 하고 있지만 미군의 활약 앞에선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동쪽에 있는 동굴도 이제 함락 직전까지 왔습니다.
그러다 니시 중령이 폭탄에 맞아버립니다. 치료할 약도 탄약도 병사도 없습니다.
병사들에게 짐이 되기 싫은 니시 중령은 이쪽 방어선을 포기하고 북쪽 동굴로 이동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내립니다.
혼자 남게 된 이시중령 그동안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습니다. 미군이든 일본군이든 간에 인간이라면 죽음이란 공포는 누구에게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시미즈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렇게 그 둘은 투항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예상치 못한 다른 병사 반응에 일이 꼬여버리지만 운 좋게 시미즈는 살아남았습니다.
시미즈는 미군 진영에 들어오게되고 그때 미군들은 급하게 전선 이동을 하며 병사 두 명에게 감시를 시킵니다.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전시 상황인 만큼 한 미군 병사가 좋은 생각이 있다며 포로인데도 불구하고 일본군 두 명을 사살합니다. 북쪽 동굴로 이동하는 도중 일본군 시신을 발견하게 되고 사이고는 그가 살기 바랬을 뿐인데 항복을 하고도 죽임을 당한 모습에 가슴이 미어져 옵니다. 이제 이오지마 섬에 마지막 방어선인 북쪽 동굴만 남았습니다 가는 길목마다 미군이 버티고 있어 도착하기 전에 많은 병사를 잃습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병사는 몇십 명에 불과했습니다.
사이고도 그 중 한 명입니다.

마지막 총 공격을 하기 전 사이고에게 세 번째의 기회를 줍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막다른 절벽에서 남아 있는 병사들과 야간 기습을 준비합니다. 아침이 되고 부상을 당한 쿠리바야시 장군. 이오지마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승패를 떠나 이제 이곳엔 죽은 자와 산 자만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만난 사이고와 쿠리바야시 장군 사이고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며 생을 끝냅니다. 사이고에게 있어서 그는 부임한 첫날부터 인간적으로 병사들을 대해주었고 무모한 죽음으로 내몰지도 않았으며 자신을 몇 번이나 살려준 은인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이고를 보여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3. 전쟁의 피해자

이 영화는 일본 영토에서 미국과 벌어진 첫 전투이고 태평양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곳 중 한 곳인 이오지마 전투를 그린 영화입니다. 보잘것없는 작은 섬 이오지마 섬의 양측 피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상자 수로 계산하면 일본보다 미군의 피해가 더 컸습니다. 태평양 전쟁 통틀어 미군의 피해가 컸던 것이 이오지마 섬이 유일하고 일본 정부는 사이판 혹은 필리핀 전선에는 사활을 걸었지만 이오지마섬은 오히려 버린 패였습니다.
그런 쿠리바야시 장군은 이길 수도 없는 싸움이고 본토의 패망은 시간 문제였던 시기였습니다.
그렇다고 항복할 수도 없어 고립된 일본군들은 최대한 피해를 주자라는 생각으로 작전을 구상한 게 땅굴 작전이었습니다.

지하 요새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직도 의문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이 영화를 제작한 사람은 미국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입니다. 일본인 시각으로 바라본 영화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라면 미국인 시각으로 만든 영화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게 아버지의 깃발입니다. 하나의 장소에서 두 개의 시선을 느낄 수가 있어 개봉 당시 두 편 모두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본과 역사를 연결한다면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게 현실 그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에서는 전투신보다는 개개인의 심리적 변화가 극한으로 몰리면 어떻게 변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고
일본 시각으로 그려지는 영화라 일본이 전쟁 피해자로 비춰지는 모습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전쟁 피해자는
강제 징용 당한 각 나라 청년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민간인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오지마선에는 현재까지도 실종자가 1만 명 이상 한이 묻혀 있다고 합니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 아내를 그리워하며 최후의 순간까지 일본군들의 사투를 그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강력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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